예배

제목 2021년 7월 25일 주일 예배
글쓴이 관리자  (98.207.13.35)
날짜 2021-07-25
조회수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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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9장 거룩 거룩 거룩

용서의 선언    시편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기도             김남헌 장로님  도문음성듣기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각자의 모양대로 질서를 세우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생각해 볼수록 어떻게 우리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놀랄 뿐입니다. 그저 세상에 일어나는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 하나님을 알았다기보다는 우리의 주관적인 역사에 들어오셔서 특별한 사건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심도 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가 교만할 때에는 만나주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비워 낮을 데로 낮아진 상태에서 조용히 다가오셔서 손을 잡아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세상에서 외롭고 괴롭고 힘들 때에 친히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세상에서 살아갈 희망과 소망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심지어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한량없는 은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세세무궁토록 영광과 존귀와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옵소서.

그동안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 자신을 세상의 잡다한 욕심으로 가득 채우고 각자의 소견대로 살면서 주님의 존재와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능력을 믿고 세상 속에서 더 세속적으로 사는 데에 귀를 귀울이고 마음을 쏟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닫혀있어도 세상적인 눈에 의지하여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영적인 병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믿음의 형식만을 따르며 바리새인처럼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영적인 환자들인 우리가 믿음을 헛되이 자랑하며 세상적인 일에 너무 집착하였습니다. 성령의 알려주시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세상적인 안락, 물질의 자랑 및 세상적인 지혜를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지나친 욕심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눈과 귀와 입술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과 전혀 반대로 행하였습니다. 이 모든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합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이 원하는 우리의 모습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교정시켜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또한 주님이 우리 안에 내주(요한 14:17)하셔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성령이 기뻐하시는 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되새겨 그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달아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을 주소서.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몸이지만 주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사 전혀 새로운 거듭난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우리에게 주신 각자의 달란트를  땅 속에 묻히지 말고 주님의 의와 나라를 위해 사용하며 주님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때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주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게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의 남은 날을 계수함이 지혜롭다(시 90: 9-12)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시간을 아끼고 세상일보다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을 행하며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주시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대성장로교회의 내외부 모습이 성도들이 세상에서 당한 찢어진 마음의 상처처럼 여기저기 상한 곳이 많습니다. 겉모양의 교회의 복구처럼 영적인 회복을 할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시사 교회의 외형적 remodeling처럼 우리의 영적 건강도 회복하게 하옵소서. 갈라진 마음을 회복시키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마음 한 뜻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자녀답게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수행하되 모든 일을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낮추사 주님 앞에서 우리를 비워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성령이 함상 내주하게 하옵소서. 교회에 질서를 회복하게 하시고 머리이신 주 예수님을 따라 주님의 나라가 교회에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여러 성도님들의 가정을 살펴주시고 말씀을 준비하신 한 목사님에게 성령이 함께 하사 오늘의 말씀으로 한 주간 주 안에서 뜻깊게 살며 또한 행동하는 크리스찬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44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성경말씀        사도행전 13장 13절, 15장 36-41절

설교             한태진 목사님

설교말씀음성듣기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제가 잘 알고 있는 선배 목사께서 교회에서 부임해서 목회한지 15년 만에 모든 가족이 

여름 방학에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큰 아들, 둘째 아들이 정말 기뻐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자마자 뒷 자석에 앉아 있는 아들 둘이 말장난에서부터 티격태격 장난을 

치더니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두 부부가 아들들을 달래면서 참고 참았습니다. 

싸움은 여행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큰 아이에게 형이 참아! 여기에 큰 아이가 폭발했습니다. 아버지가 참아! 

가족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쌓인 감정이 폭발하면서 여행지에 도착 한 후, 하루 밤도 지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성경에 집으로 돌아 간 사람이 있습니다. 

행전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마가 요한은 바나바와 바울을 떠나 자신의 집,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한 절 밖에 안되는 이 짧은 문장이 당시 초대 교회 선교 역사에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왜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 바울, 마가 요한 3 사람이 1차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마가가 선교 여행 도중에 바나나와 바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이 선교여행이 어떤 여행이었습니까?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이 몸과 마음, 영적으로 재충전 한 다음에 다시 2차 전도 여행을 안디옥 교회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시기가 50년경이었다. 2차 선교여행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1차 여행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도시에 다시 찾아가서 예수님을 믿고 있는 형제들과 성도들의 신앙과 삶의 상황이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방문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2차 선교 여행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원하지 않았던 문제의 복병을 만났습니다.

15장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절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여러분 무슨 일이 바나바와 바울에게서 일어났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나바의 제안을 반대했습니다. 왜요?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바울은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간 사실을 말하면서 2차 선교 여행에 함께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거절했습니다. 이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39절에서 서로 심하게 다투었다는 말은 두 사람이 마가의 문제로 격분했고 서로의 감정이 심하게 상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은 마가의 문제로 갈라습니다. 그리고 따로 따로 선교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다시 자신의 고향 구브로 섬으로 갔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13장 13절,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은 당시 초대 교회 선교사역에서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왜요? 성령이 가라사대, 성령님의 인도로 시작한 세계 선교 사역이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마음을 모아 선교 사역을 해도 부족한데, 두 사람이 서로 심하게 다투었고 그 결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교회 역사에서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러분 이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합니까?


사도행전은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 때문에 서로 갈라진 이후에는 다시 만났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마가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간 바나바는 초대 교회 전승에 의하면 자신의 고향 구브로 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무엇 보다 제일 먼저 마가 요한이 누구였을까?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왜요? 마가가 누구였는지?를 알아야만 왜 마가가 선교 여행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의 이름은 사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가 요한의 이름이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2장 12절입니다.

행전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가 헤롯에게 잡혀 처형당하기 전날 밤에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온 후에 찾아간 곳이 바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2장 5절은 바로 이곳이 예루살렘 교회였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성령이 역사한 장소가 마가 요한의 집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가 요한의 가정와 마가는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당시에 예수님의 12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사역을 하실 때에 예수님 옆에서 있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오늘 본문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이었습니다. TROUBLE MAKER 였습니다.


마가 14장에 예수님이 체포되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아주 희한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마가 14:50-52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스트리킹 청년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마가였습니다. 

4복음서에서 마가 복음만이 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요? 벗은 몸으로 도망 간 청년이 마가 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사건을 복음서에 기록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특이한 경험, 머리에서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건을 고백했습니다. 왜요? 마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정말 말하기 쉽지 않은 내용, 낯이 부끄러운 경험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문제 많은 마가가 믿음의 사람으로 변했던 원동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 바울이 멀리했던 사람, 마가를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양육했습니다. 왜요? 베드로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 마가를 보면서 옛날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왔다리! 갔다리! 하는 제자였고 주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의 자신의 모습을 마가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약하고 부족한 마가를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세워줍니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 5장 1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베드로전서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를 마감하면서 편지 마지막에 로마에 있는 마가를 자신의 아들, 믿음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서 위대한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마가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 마가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면 언제나 성령의 역사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질 줄 믿습니다. 

마가 요한의 행적은 바울과 헤어진 이 후에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 마가는 변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 안에서 변한 마가가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놀랍게도 마가는 로마 감옥에서 바울과 함께 고생했습니다. 여러분 이것만이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기 얼마 전에 마가를 언급했습니다. 

디모데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말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마가가 내 일에 유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왜요?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시간에 마가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선교 사역이 마가를 통해서 계속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여러분 마가 요한이 변했습니다. 

마가는 마가 자신이 만났고 체험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바로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 안에서 변했고 새로워졌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접촉하고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 핍박 가운데 승리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 마가였습니다. 


주후 64년에 엄청난 화재가 로마에 발생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불길에 싸여 로마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이상한 괴소문이 났습니다. 

방화범들이 예수쟁이들이다! 사실 로마에 불을 지른 사람 당시 황제 네로였습니다. 

네로는 로마를 통치하는데 원로원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네로는 자신의 통치기반이 흔들리자 이 위기를 넘길 기회를 찾으면서 정치적인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로마를 불태웠습니다. 그러면서 네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희생양을 찾는데 기독교인들을 로마의 방화범으로 몰았습니다. 

당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이 사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쟁이들은 로마의 신이 아닌 부활한 이방신 예수를 믿는다. 그들은 로마 정부가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불만을 갖고 로마를 불 질렀다. 


당시 네로는 자신의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로마를 불태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체포했고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더 잔인한 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성도들을 불태워 죽였고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나운 동물들에 물려 죽였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쿼바디스입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처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런 박해를 피해서 성도들은 이리저리 사방으로 목자가 없는 양떼처럼 흩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살아남은 성도들이 카타콤 지하 동굴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극심한 박해와 핍박, 고난과 역경이 거대한 태산과 같은 파도처럼 몰아치는 시기에 

작은 소책자 하나가 성도들 사이에 건너지게 됩니다. 이 소책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가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바로 마가복음입니다. 


처참하게 순교하며 죽어가는 형제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식, 카타콤 동굴로 숨어들어가 있는 성도들에게 알리고 싶고 소식, 자신들을 핍박하는 로마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식,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 기쁜 소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짧은 구절은 마가가 마가복음 책을 쓰면서 아무 뜻 없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쓴 것이 말이 아닙니다. 마가가 자신의 생명을 내 던지면서 마가복음서의 서론으로 책의 첫 머리에 위대한 선언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순교자에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소망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핍박받는 성도들의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고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 우리 교회의 소망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위기의 순간이 바로 소망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지금 깊은 어둠의 밤이 내일의 소망의 아침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내가 지금 당하고 겪는 위기와 고통이 내일에 있는 승리를 향한 보증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복음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가가 예수님 안에서 변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마가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여러분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접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접촉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발걸음으로 출발하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믿음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연약했던 마가, 쓰러졌던 마가가 만난 예수님,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지금 고난당하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지하 카타콤 동굴에 숨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로마의 원형경기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성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이 증거 된 시대와 동일합니다.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지난 해 3월부터 시작된 팬데믹 상황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종 코비드 상황이 완전하게 종식되는 시기가 언제일까?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해 주는 국가, 정부, 사람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건강도 자신이 없습니다. 직장도 불안합니다. 사업도 불투명합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합니다. 


내일 나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더 불안합니다. 

더욱이 내 주위를 살펴보면 정말 믿을만한 사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요? 

사람 그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흔들리기에 세상이 흔들립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변합니다. 우정도 시들고 돈도 없어지고 영광도 잊혀집니다. 

계절이 바뀌듯이 사람도 세상도 변합니다. 


그러나 불확실성 시대에 확실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연약한 마가, 문제가 많았던 마가가 변했습니다.

마가는 자신이 만났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역경의 시기,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만왕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 소망, 능력, 기적, 은혜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찬송             예수 이름 높이세

헌금

찬송가          499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축도            한태진 목사님

송영            아멘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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