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제목 2021년 5월 2일 주일 예배
글쓴이 관리자  (24.6.240.96)
날짜 2021-05-02
조회수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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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5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용서의 선언    시편 86: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기도             김남헌 장로님  도문음성듣기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세상 끝날때까지 주관하시며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만물 속에 모든 질서를 세우셔서 자연을 볼 때마다 주님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진리를 봅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들판의 색깔이 바뀌고 이름 모르는 작은 꽃들이 살아움직이는 것을 볼 때 이렇게 작은 식물들에게도 하나님이 생명을 불어넣으심에 감탄과 경이와 경외를 느낍니다. 인간만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동식물들에게도 주어진 법칙을 제정하사 계절에 알맞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심도 놀라운 일로 느껴집니다.  세세무궁토록 영광과 존귀와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옵소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자연의 주인인줄 알았지만 날로 황폐해가는 자연을 보며 인간들의 발전을 향한 지나친 탐욕이 오히려 인간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특히 자동화를 비롯한 여러 문명의 이기들이 인간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빈부의 격차와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과 생활환경의 열악함을 초래하게 되어 지구의 시계는 마지막날을 향해 가속도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한 죄의 결과는 사망(약 1:15)으로 이끌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지나친 탐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지도 잘 모르고 심지어 무엇을 뜻하고 말하는 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만하여 무엇이든지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삿 21:25). 세상이 악해져 우리는 스스로 교만의 자리에 오르고서도 심지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믿음과는 배치되는 일을 하기도 한 우리들입니다(막 14:38).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및 이생의 자랑을 매일 일과로 삼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이는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요일 2:16).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달고 오묘한 주님의 말씀에 이끌리어 주님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복있는 자의 길에 서게 하옵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게 하옵시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듯이 셩령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롬 12:21) 믿음과 지혜와 명철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우리의 삶에 항상 주님이 동행하사 성화의 길을 앞으로만 달려가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주신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영적 전쟁에서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게 하사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닌 이웃의 구원에도 열심을 내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할 수 있게 하옵소서. 마음의 중심을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주셔서 이 시대에 주님을 향한 남은 자(미 2:12)들이 험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능력과 용기와 믿음과 담대함을 주소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넘쳐나 이웃에게로 흐르도록 하소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와 선교에 힘쓰며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할 수 있도록 (딤후 4:2) 우리를 연단하여 주소서. 교회의 여러 사역을 위해 수고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사 하늘의 큰 평강과 위로를 주옵소서. 

 

말씀을 전하시는 한 목사님에게 성령이 함께 하사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을 주사 우리를 변화시켜 거듭나게 하시고 거듭난 우리가 몸소 실천하는 믿음을 주소서.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57장 즐겁게 안식할 날 

 

성경말씀        사도행전 9장 32-43절

설교             한태진 목사님

설교말씀음성듣기 

 

확실한 예수님의 약속

 

지난 주일 예배에 선포한 말씀을 통해서, 그리하여,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931절 말씀을 읽으면 무엇인가 생각이 나는 말씀이 없습니까?

, 사도행전 18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사시면서 18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오순절 날에 하늘에 열려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다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 끝까지 증거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은 행전18절 말씀대로 정확하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러면서 931절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미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후에 온 유대와 갈릴리 그리고

사마리아로 복음이 증거되면서 교회가 세워졌고 평안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땅 끝, 이방 지역과 이방인에게는 어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을까?

그래서 오늘 본문 9장과 다음 주일에 읽을 10장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요?

 

사도행전은 1부를 마치면서 8장에서 빌립이 유다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간다게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세례를 준 사건으로 마감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사도행전 2부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메섹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사도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간증했습니다. 그 후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증거한 것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약속,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빠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땅 끝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왜 중요할까요?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증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9장과 10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사건은 2개의 기적 사건입니다.

하나는 8년 동안 중풍으로 고생했던 남자 애니아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시 수많은 과부들을 구제했던 예수님의 여자 제자 다비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적입니다.

 

왜 이 사건들이 중요합니까?

첫째, 장소가 중요합니다.

32절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36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애니야는 룻다에 살았습니다. 다비다는 욥바에 살았습니다. 이 두 곳은 예루살렘에

서쪽으로 지중해 해변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입니다.

룻다, 욥바, 가이사랴 등의 지역은 헬라 문화 속의 도시들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두루 다니나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지난 간 길은 예루살렘에서 서쪽 지중해 지역으로 내려가서, 남쪽으로는 블레셋 평야를 지나 애굽으로 가는 곳으로 그리고 다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는 가이사랴를 지나 지중해 해변길을 통해서 갈릴리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지중해연 안에 위치한 가이사랴는 빌라도 총독과 함께 로마 정예부대 군단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땅은 유대 지역이었지만 해변 지역이였기에 오래 전부터 이방문 화가 가장 먼저 들어 온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 지역으로 간주 된 장소였습니다. 이곳에 실고 있는 유대인은 혈통은 유대인이었지만 문화와 종교, 삶의 근거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더욱이 룻다에서 욥바는 북동쪽으로 15 Km,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리는 장소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룻다에서 욥바로 나가는 길은 복음이 유대를 넘어서 이방으로 진출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룻다의 애니야 사건과 욥바의 다비다 사건은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 어디로 나가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42-43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둘째,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36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다비나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비다 유대식 이름이고, 또 다른 이름 도르가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당시 다비다는 예수님을 믿고 제자된 후에 고난을 받는 사람, 약한 시람들, 소외를 당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구제하고 섬겼습니다. 사실 선행과 구제는 나에게 돈이 있다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아름다운 눈과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비다가 여자 제자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8년 동안 중풍으로 고생한 애니아가 일어났고,

죽었던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을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34절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가 애니야를 부른 후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베드로가 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신다! 이 말은 예수님의 이름으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이나 말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이 주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칠 때에 베드로가 말한 것이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행전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둘째, 기도입니다. 베드로가 다비다의 집에 들어가서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목사든지 성도든지 우리가 살면서 나에게 생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에서 출발하면 결론이 나옵니다. 왜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독대이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능력이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베드로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다락방에서 다 내 보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왜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드로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며 기도로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자리에는 구경꾼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이렇게 행동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마가 5:40-41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미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실 때에 이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면 됩니다.

 

베드로가 기도와 함께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실 유대인인 베드로에게 이렇게 무릎 끓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렇게 익숙한 장면이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왜요? 베드로는 죽은 시신, 다비다 앞에서 자기 자신은 아무 것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겸손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부활의 능령이신 예수님만을 의지한 기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40절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여러분 지금까지 예수님의 어느 제자나 사도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 제자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죽은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명령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베드로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시체 다비다에게 말한 명령어를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 8: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여러분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서 배운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삶으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기도하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결과가 무엇입니까?

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절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여러분 사도행전을 쓴 사람은 의사 누가입니다. 그래서 의사 누가는 사람이 치유되는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본문에 다비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몇 단계로 증거했습니다.

첫째 죽은 다비다가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둘째 죽은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셋째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다비다를 일으켰습니다.

넷째 완전히 다시 살아 난 것을 확인하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다비다가 다시 산 것을 두 눈으로 보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욥바의 성도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까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욥바 사람이 이 사건을 듣고 안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만큼 이 사건은 분명한 사실이고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들을 보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교회에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 사건들이 생각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잘 아시는 사실도 박찬영 집사님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 지금 걷고 한 손으로 골프하고 계신 것도 기적입니다. 송승윤 장로님이 암과 오래 동안 싸우면서 정말 힘든 투병으로 고생했는데 이제는 거의 완치된 것도 기적입니다. 염영자 권사님이 지난 2년 동안 암과 싸우면서 지금은 거의 완치된 것도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성경에서 그리고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가 16:15-19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요한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여러분 오늘 본문은 룻다의 애니아를 통해서, 욥바의 다비다를 통해서,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두 눈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약속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문의 기적 사건은 복음이 본격적으로 이방인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약속, 말씀처럼 이방인의 장벽을 넘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여기에 성령님이 역사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9장 다음 10장에서는 이방인 로마군이 백부장 고넬료와 온 가족이 구원받는 은혜의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장과 10장을 통해서 사도행전은 본격적으로 복음이 어디를 향해서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5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41절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찬송가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헌금

찬송가          456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축도            한태진 목사님

송영            아멘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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