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제목 2021년 2월 21일 주일 예배
글쓴이 관리자  (24.6.240.96)
날짜 2021-02-21
조회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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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용서의 선언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기도             전군종 장로님  도문음성듣기 

 

세상 모든 일을 주무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저희에게 평화로운 주일 아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조금씩 따듯해지고, 해가 길어지면서 들판에 푸른 풀이 저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니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바다가 가까운 이곳은 이번 한파를 피해서 여느 초봄과 다르지 않은 신록이 우겨져 가는 계절을 맞고 있지만, 멀지 않은 다른 주에서는 많은 눈과 계속된 추위로 생각지 못한 어려움 겪는 소식을 듣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전기가 중단돼서 밤새 자동차 안에서 냉기를 피야하하고, 수도관이 동파가 돼어서 집 밖이 아니라 집안에 때아닌 홍수가 나고, 도로는 크고 작은 차 사고로 많은 인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모든 수난이 평소보다 조금 더 내린 눈, 몇 도 더 낮은 온도가 며칠 더 계속된 작은 기후의 변화 때문인 걸 보고 저희는 다시금 자연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하나님의 보살핌 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이 나라뿐이 아니라 전세게에서 이상기후로 생계가 흔들리고 사는 터전을 잃은 수많은 이웃들의 고통을 굽어보시고, 태초로부터 허락하신 자비로운 환경을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교회 모든 식구들이 사사기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탐사선이 화성에 내려서 사진을 찍고 토양을 채취하는 이 시대에 예수님 복음선포 이전에만 선택받은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의 초창기 전쟁 이야기는 저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도무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하나도 연관이 없는 산발적이고 원시적인 전쟁기록을 읽으면 저희는 어떤 배움을 받을 수 있는 건지요. 

하지만 저희는 살면서 어려울 때마다, 내가 펼친 성경구절을 읽고 내 머리로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내 앞에 펼쳐지고, 주님의 말씀이 글자들을 통해서 제 가슴에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성경이 살아서 내 귀에 속삭이는 기이한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이 한 몸이라는 귀중한 체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지체라도 저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저희의 지혜로는 올바른 길이라 믿지만 지나고 보면 나의 편안함과 안위를 위한 선택을 하나님의 같이 하시는 길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사사시대의 12지파와 많이 틀리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도 오늘의 세상 그대로 입니다.

어지러운 전쟁들을 관통하는 사사들의 기록은 역사의 모든 면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희 하나하나를 불러주시고 구원하셨듯이, 성경공부를 통해서 각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려주소서. 회계하고 감사하게 하소서.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안정된 생활로 돌아갈 날은 가까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의 정리되지않은 질문에 응답하시기를 간구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이미 죄악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받은 우리, 말씀으로 지혜를 주시고 믿음으로 굳건하게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의 단위에 세우신 한 목사님을 통해서 저희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성령의 온화한 축복을 내리는 귀한 말씀 저희에 주소서. 

위중한 병세로 투병하는 식구를 간호하기 위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려운 여정에 오른 권속들이 있습니다. 

부디 그 가고 오는 길, 다치지 않게 하시고 어디 있던지 힘들지 않게 붙들어 주시길 다 같이 소망합니다. 

이 모든 말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영생의 확신을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찬송가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성경말씀        창세기 21장 1-7절

설교             한태진 목사님

설교말씀음성듣기 


웃음회복 성령으로 건강하게 살자 3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퀴즈를 내겠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에게는 큰 힘이 있습니다. 나를 사용하면 즉시 효과가 나타납니다.

나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혼자서 만날 수도 있고 둘,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내 앞에서는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나와 함께 하면 담대해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좋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아무리 많이 가져도 절대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많고 어른들에게는 적습니다.

그런데 나는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여러분 나는 웃음입니다. 성경에서 웃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6절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신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다 나와 함께 웃는다

이 한 문장 말씀이 나는 누구일까? 설명한 긴 문장의 요약입니다.

이 한 문장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말씀하는 문장입니다.

 

여러분 웃음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원인을 크게 2가지로 1) 생물학적인 요인과 2) 인지적인 요인으로 구분합니다. 웃음은 인지적인 요인에서 일어납니다.

인지적인 요인이란? 우리가 외부로부터 무서운 위협을 경험하면 머리에서 공포의 감정이 일어나게 합니다. 동일하게 웃음은 우리가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를 귀로 듣든지 어떤 모습을 눈으로 볼 때에 그 상황을 판단해서 웃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웃음은 외부적인 요인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6절에서 사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신다.

 

사람이 웃는 일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입니다.

그래서 웃음은 내가 지금 기쁘다 기분이 좋다 즐겁다는 감정이 얼굴에 표현된 것입니다.

연구보고에 의하면 사람은 일평생 약 50만 번을 웃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웃을 때,

우리의 얼굴 근육이 80개 중에서 13개의 근육을 사용하면서 웃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얼굴을 찡그릴 때에 사용하는 근육은 웃을 때보다 다섯 배인

64개의 얼굴 근육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화가 나면 날수록 얼굴에 주름이 더 생긴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웃음이 우리 얼굴 건강에 좋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1번 크게 웃으면 우리 몸 전체의 650개의 근육 중에서 231개의 근육이 움직입니다.

우리가 웃을 때 마다 내 몸 근육의 1/3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웃음은 만병 통치약이다!라고 말합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좋은 웃음을 하루에 아이들은 400

어른은 15번을 웃는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우리들은 점점

웃음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어제 크게 한번 웃어 보셨습니까?

오늘 아침에 웃어 보셨습니까? 아니 언제 한번 크게 웃어 보셨습니까?

웃음을 연구한 보고에서는 사람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사라에게 주신 웃음이 무엇입니까?

3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아들 이삭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 이삭, 웃음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날 당시 아브라함 나이가 100, 사라의 나이가 90세였습니다.

100세 노인 가정에 아이가 출생했습니다. 사라가 얼마나 기뻤는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6절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신다. 내가 웃는 것을 본 사람들, 그리고

내가 왜 웃는 지 소식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다 나 함께 웃게 하셨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과 사라 가정만이 웃음이 아니라 온 동네의 웃음이고 웃음축제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황홀하고 가슴이 벅찼을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웃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웃는 인생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힘든 일들 때문에 웃음을 잃어버린 체 사신 분들이 계십니까?

웃음을 회복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내 가정에 언제부터 웃음이 멈춘 것 같습니까? 웃음소리를 들은지가 오래 되십니까?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웃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나도 웃고 우리가족도 웃고 우리 이웃도 함께 웃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웃어야 할까?

1. 건강에 좋습니다.

내과의사 알렉시스 카렐 박사가 이런 연구보고를 냈습니다.

사람의 위 색깔은 그 사람의 얼굴색깔과 같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얼굴이 웃으면 위도

웃고 반대로 얼굴을 찡그리면 위도 찡그리게 됩니다. 그래서 웃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소화불량입니다.

 

웃음이 우리 건강에 좋은 것이 이것만이 아닙니다.

웃으면 웃는 만큼 사람이 겪는 온갖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특별히 웃을 때에 우리 몸에서 나오는 교감신경활동을 억제해 줍니다. 그래서 불안, 초조, 긴장 등 스트레스가 줄여줍니다. 반대로 웃을 때에 부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우리 몸 상태를 이완시켜줍니다. 그래서 웃어야 긴장 초조 모든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이 큰 축복 중에 하나입니다. 왜요?

크게 한번 웃으면 에어로빅을 5분동안 한 효과가 있습니다.

20초만 웃어도 5분 동안 힘들여 배 노를 젓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스웨덴의 노먼 커즌스 박사는 웃음은 내면세계의 깊숙한 마사지이며 사람체내의 조깅이다

라고 정의했습니다.

UCLA대학 프리드 박사는 사람이 하루에 45분을 웃으면 고혈압, 스트레스와 같은 현대인의 질병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음은 수많은 호르몬과 면역물질을 생성하고 활성화시킴으로써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준다. 더욱이 사람이 웃을 때에 폐를 크게 부풀리면 혈관이 팽창하기에 혈류량이 늘어나면서 심혈관이 튼튼해진다고 보고했습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웃음은 억지로 웃어야 한다는 웃음치료도 생겼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웃을 때에 웃음으로 생기는 얼굴표정이 우리 뇌에 전달되어 다시

웃음을 생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거울을 보고 웃으라는 것입니다.

이 때에 사람의 뇌에 기쁨 정서가 유발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당신 멋져! 웃으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웃으면 뇌에서 기쁨 정서가 생깁니다. 그러면서 하루가 행복 할 줄 믿습니다.

 

2. 여러분 우리가 왜 웃고 기뻐해야 합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사단은 절대로 웃지 않습니다.

마귀, 사단의 대표적인 말이 참소하는 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단은 언제나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가고 우리의 행복을 무너뜨립니다.

그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십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웃게 역사하십니다.

6절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한 15: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오셔서 3년 동안 사역하면서 웃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셨습니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웃게 역사하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한 웃음이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바로 기쁨입니다.

그래서 웃음 단어를 신학적으로, 신앙적인 말로 다시 표현한 것이 기쁨, 기쁘다 입니다.

웃음은 기쁨의 외적인 표현이고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기쁨은 웃음의 내적인 원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왜 웃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웃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옵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다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 4: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어떤 상황이 나에게 와도 웃고 기뻐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사라를 그리고 나를 웃도록 역사하실까?

1절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사라를 권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요?

1절은 2번이나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셨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오신 사건을 하나님이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다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방문하셨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말씀대로 사라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라에게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으로 나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마태 1: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임마누엘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으로 사라에게 웃음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 기적사건에서 사라의 믿음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11-12절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당시 사라의 나이가 90였습니다. 사라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을 믿었습니다.

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그래서 하나님이 사라가 믿는 믿음대로 사라에게 역사하셨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응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90세 생신을 맞으셨던 손복원권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말씀으로 90세 생신예배 설교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 사라처럼 하나님이 권사님을 웃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라고 설교했습니다.

손권사님께서는 이북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그 당시 여성으로 법대를 졸업하시고 연세대학교 간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문직 여성으로 사셨습니다.

남편과 사별하신 후에 미국에 이민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 뿐인 아들 박찬영집사님을 위해서였습니다. 권사님의 소망은 아들 되신 박집사님께서 날마다 신앙으로 승리하면서 온 가족들이 믿음으로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권사님의 기도와 소망대로 박찬영집사님께서 믿음으로 승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자들이 믿음의 가정으로 우뚝 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이삭, 웃음을 낳은 것처럼 손권사님도 웃음의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제가 지금도 권사님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심방가서 권사님을 뵈면 언제나 웃으시면서

목사님 바쁘신데 또 오셨슴네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권사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으로 사시다가 천국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같이 이렇게 믿음으로 선포하기를 소망합니다. 내 인생은 이제 웃을 일만 남았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셔서 모든 사람들도 함께 웃게 하신다.

그래서 월요일은 원래 웃고, 화요일은 화사하게 웃고, 수요일은 수수하게 웃고

목요일은 목숨 걸고 웃고,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웃고, 토요일은 토실토실 웃고

일요일은 일어나자마자 웃고 주일이기에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다같이 읽습니다.

6절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찬송가          427장 내가 매일 기쁘게

헌금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축도            한태진 목사님

송영            아멘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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