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제목 2021년 1월 10일 주일 예배
글쓴이 관리자  (24.6.240.96)
날짜 2021-01-10
조회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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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2장 고난 받은 주를 보라

용서의 선언    시편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기도             김남헌 장로님  도문음성듣기 

 

말씀으로 우주만물과 역사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해에는 COVID-19으로 인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지만, 새해에는 비대면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질병을 주신 것도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우리는 어리석어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Vaccine의 개발로 점차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으니 이 또한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세세무궁토록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옵소서. 

 

지난 세월동안 우리는 주님을 따른다고 입으로는 고백을 하였지만 혼탁한 세상에서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에 묻혀 살아왔습니다. 각자 목표를 정하고 쉴 새없이 달려왔지만 주님께 제대로 보여줄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매인 일들이 너무 많아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뜻을 저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주여!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도말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안에 계셔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주님 예수를 닮아가게 하여 주소서. 곤고한 우리 영혼을 깨끗게 하여 주시고 주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주소서.

 

세상은 지금 4차 산업분야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기술, 유전자제어기술, 가상 및 증강현실 등의 첨단기술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은 인간생활에 편리함을 준다는 명분으로 시작은 하지만 오히려 기계화된 세상과 물질만능주의로 기울며 인간성이 도외시되고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믿음이 점점 더 작아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개발된 여러 문명의 이기들이 문화를 경시하거나 파괴적인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주님이 주신 지혜가 남용되어 인간에게 위협적이며 신앙에 도전을 받게 되는 이상한 귀결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주님을 향한 믿음이 적어지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일이 너무 바빠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보게 됩니다. 한편으론 교회에서 열심인 성도들이 사회에서 뒤쳐지는 현상도 봅니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는 말씀으로 그들을 설득하기에는 믿음이 너무 나약함을 느낍니다.  성경말씀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저 나와 내 가족만 주님을 믿으면 되는 것인지요? 영적인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히 4:12)”고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영적해석이 필요합니다. 

 

주님! 성령의 풍성한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주소서. 우리의 중심이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혼탁한 세상에서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의 영혼을 소성하게 하시고 어디서든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소서. 종의 모습으로 오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 모두가 성도들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인도자가 되게 하소서. 살아움직이는 말씀을 세상에 담대히 전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주소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에게 영적 능력을 주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오는 한 주간 우리를 깨어있게 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치가 되어 움직여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게 하소서. 예배에 여러모로 헌신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사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소서.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30장 여호와 하나님

 

성경말씀        요한복음 4장 21-24절

설교             한태진 목사님

설교말씀음성듣기 


예배에 집중하자

 

2021년 교회 표어가 성령으로 강건하게 살자!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올해는 두 가지를 우리 삶에서 실천하면서 사시기를 원합니다.

1. 주일 예배에 최선을 다하자 2. 교회 말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이 내용으로 오늘과 다음 주일 2주에 걸쳐서 계속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자유롭게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1세기 과학 문명의 최점단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생각했습니다.

왜요? 지금 교회에 모여 대면 예배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컴퓨터와 유튜브 그리고 ZOOM

통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감사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신종코로나 전염병이 발생했다면, 그래서 예배를 교회에서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예배를 드렸을까?

이 세상에는 우리들만이 아니라 지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자유롭게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혹은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를 생각하면서 예배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기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러분 오늘 읽은 본문은 사복음서에서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배경과 이유가 아주 특이합니다. 왜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이 산은 사마리아 지역 세겜에 위치했던 그리심 산과 에발 산입니다. 이 산은 구약 신명기 27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 서서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을 맹세하라고 명령하며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에 여호수아서 8장과 24장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소집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이 산 아래에 모여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살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모든 지파들 앞에서 약속한 언약의 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예배하지 말고 그리고 시온 산이 서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예배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왜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올라가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움직임이 평상시와 달랐습니다.

요한 43절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4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당시 사람들은 남쪽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올라 갈 때에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택해서 올라가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다니지 않았습니다. 왜요?

이 경로는 당시 걸어가는데 가장 어렵고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척박한 유다 산지를 지나서 유다 광야로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힘든 난코스를 택했습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 방향으로 올라가면 당시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했고 혐오한 사마리아 마을을 관통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4절 말씀합니다.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영어로 지나가야만 하겠다. MUST입니다. 무슨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가야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왜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올라가시기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이 당시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 두 눈으로 보신 현장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물질과 돈으로 타락했고 세속화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채찍을 들었습니다. 상을 엎으시면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동물들, 물건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했습니다. 왜요?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서는 안된다.

이곳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종교인들에게 타락한 예배에 도전하신 후에 사마리아로 들어가셨습니다. 왜요? 당시 사마리아인들도 이방인의 모습으로 타락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사마리아에 오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로 예배의 회복을 선언했습니다.

 

둘째, 오늘 이 사건은 창세기 4장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실패한 가인의 예배를

다시 회복한 사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시는 구원이 목적입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창세기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그리고 아담의 아들 가인이 실패한 사건을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 회복과 말씀 회복입니다.

말씀 회복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실패한 사건을 마태 4장과 누가 4장에서 회복해 주셨습니다. 다음 주일에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서 4장은 예배 회복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말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공관 복음서는 말씀 회복을 요한 복음은 예배 회복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동일하게 우리도 가인처럼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로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일까?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신령과 진정 이 말씀은 영과 진리로 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씀은 영과 진리 두 가지를 가지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 안에서 진리의 영 안에서 예배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리의 영 안에서 예배하는 것은 진리로 이끄시는 영 안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로 이끄시는 영이 무엇입니까?

요한 1613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교리나 이론이 아니라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배는 진리이신 성령의 역사 안에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이 만남을 통해서 죄인인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붙들게

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고

이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영성신학자 A. W. 토저가 현대 교회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현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예배는 없다.

이런 예배를 드리지도 못하면서 교회 예산과 목회를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고 계산하는 사람만 있다. 기도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모순이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 진리의 영으로 예배한다는 말씀은 내 삶에 그렇게 와 닿지 않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이 드린 제사와 예배를 통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드려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 하신지라

 

본문에서 크게 2가지 사실에 주목하시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아벨과 아벨이 드린 제물에 열납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말씀을 히브리서 114절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1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여러분 아벨이 드린 제사는 가인이 드린 제사와 달랐습니다. 어떻게요?

1) 믿음이 달랐습니다. 마음이 달랐습니다. 준비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자신의 전 삶을 드린 제사였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2) 제물이 달랐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은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희생 제물이 아벨의 믿음을 증거한다고 히브리서 11장이 말씀합니다. 왜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양을 죽였습니다. 양의 피가 쏟아졌습니다.

이것이 나를 위해서 어린 양 대속의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9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보혈의 피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와 구속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의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2. 아벨이 드린 제사를 증거하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창세기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열납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열납했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인은 예배를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신 중심으로 생각했고 예배를 자신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이 드린 제사를 받지 않는 것에 가인이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창세기 45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편하고 좋은 것이 하나님이 편하고 좋다! 정말 그럴까?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불편하고 힘든 것이 하나님에게는 편하고 하나님이 원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열납이라는 단어가 요한복음 4장의 신령과 진정 단어와 동일합니다.

열납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의 시선을 주목시킨다, 집중시킨다 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열납하셨다! 무한한 우주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유한한 인간,

아벨이 드리는 예배에, 그 제물과 장소에 집중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 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그러나 이 예배 중에서 하나님의 시선이 집중되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시선을 집중시키지 못하는 예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매 주일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의 시선은 주목되고 있느냐?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의 모습은 이런 모습은 아닐지?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딴 생각파, 주보의 오자를 체크하는 교정파, 졸면서 예배드리는

수면파,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시간 체크파,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쪽지파, 예배 후에 있을 회의를 준비하는 회의파, 누군가?가 늦게 오며 졸고 있는가?를 체크하는 형사파

이런 예배의 모습 속에는 하나님의 시선과 내 마음이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해 3월부터 지금까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현재 내가 드리는 예배의 모습,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시선이 내가 드리는 예배에 집중하신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지금 저는 매 주일 아내와 함께 오후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작년 3월부터 6월까지는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7월부터 교회에 나가서

시간을 정해 놓고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결정했습니다. 2가지가 좋습니다.

첫째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회 본당에서 컴퓨터를 켜 놓고 방송으로 녹화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받았던 장소가 우리 교회 예배당이기에 저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아내도 같은 마음이기에 기쁘게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작년 3월부터 예배 전체가 녹화되면서 제가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아니라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를 듣는 성도로 아내와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종코로나 상황이 저를 예배하는 예배자로 변경시킨 하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이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일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일까?

하나님의 시선을 주목시키며 집중시키는 예배일까?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주목시키는 예배가 회복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눈이 내 눈과 마주치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             나를 통하여

헌금

찬송가          43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축도            한태진 목사님

송영            아멘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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